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인디슬리즈’ 열풍이 불고 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음악과 레이브 문화가 하이퍼 팝, 디지코어 등의 음악들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케이트 모스의 헤로인 시크, 편하게 입는 슬래커 코어 등의 트렌드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ERD), ‘ERL’ 등 뉴욕 기반 브랜드들을 통해 재해석되고 있다.
각자의 매력을 담은 다양한 문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부활하는 지금, 단 하나의 문화를 ‘유행’이라고 단언하기 힘든 지금이다. 결국 문화계 트렌드 메이커들은 이 현상을 ‘마이크로 트렌드’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로 얼버무렸다.

그럼에도 지금 흐름을 탄 문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흐트러진 모습’이 멋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그 이미지를 가장 잘 연상시키는 문화가 바로 인디 슬리즈다. 그래서 젊은 대중들은 인디 슬리즈 리바이벌에 유독 주목하고 있다.
인디 슬리즈 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케이트 모스의 ‘헤로인 시크’ 타이틀을 빼앗아버린 인물, 마이스페이스 프로필과 파티 사진 몇 장으로 인플루언서의 정의를 뒤바꿔버린 소녀, ‘코리 케네디(Cory Kennedy)’.
보그가 아닌, SNS가 키운 스타

2000년대 초, 페이스북은 명함도 못 내밀던 SNS가 있었다면 믿겠는가. 트래픽으로 구글을 이겨버렸던 ‘마이스페이스’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서 ‘최초의 잇걸’이라고 평가받는 인플루언서가 등장했다. 패션 잡지나 런웨이 위 모델이 아닌 곳에서 인플루언서가 된 코리 케네디는 일반인이 알고리즘과 트래픽으로 패션계 아이콘이 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헤로인 시크 걸”
헤로인 시크라는 시대를 상징하는 타이틀은 케이트 모스라는 슈퍼스타에게서 LA의 열여섯 소녀에게 돌아갔다.
지금도 투홀리스, 넷스펜드 등 인디 슬리즈 리바이벌을 주도하는 아티스트들을 포착하는 ‘마크 헌터’, 일명 더 코브라스네이크라는 포토그래퍼가 중심에 있다. LA 한 공연장에서 찍은 그녀의 파티 사진 몇 장이 마크 헌터와 코리 케네디를 단숨에 인터넷 스타덤에 올렸다.
헌터는 자신의 웹페이지에 코리 사진을 올릴 때마다 방문자 수가 치솟는 패턴을 발견했다.
우리는 길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단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패션 업계에 인맥이 있던 헌터는 코리를 나일론 매거진으로 데려갔다. 마이스페이스 특집 호를 준비하고 있었던 에디터는 바로 다음 날 코리를 모델로 기용해 화보 촬영까지 투입했다.
대형 광고주도, 소속사도 없는 열여섯 소녀에게 문화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코리의 부모님은 뒤늦게 딸이 인터넷 스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신기함도 잠시, 코리는 고등학교 2학년 사춘기에 접어들며 외롭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유전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부모님은 결국 코리를 UCLA의 한 달짜리 입원 치료 프로그램에 등록시켰다.
술이나 마약 때문은 아니고 그저 슬펐을 뿐이라고.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던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코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양한 매거진, 캠페인, 드라마 카메오까지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며 마이스페이스 잇걸의 위상을 보여줬다.
다시 인디 슬리즈라는 이름으로

‘인디 슬리즈’라는 단어가 그 시절을 형용하기 시작했던 2020년대, 코리 케네디는 그 중심에서 다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뉴욕 매거진>을 통해 ‘인터넷 최초의 잇걸’로 소개되며 그녀를 추억하는 동시대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운 소년, 소녀들의 동경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는 지금도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 슬리즈 감성을 중심으로 떠오른 아티스트들은 거대 자본보다 ‘디스코드’, ‘사운드클라우드’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두터운 팬층을 쌓고 있기에 그녀와 비슷한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
코리 케네디가 케이트 모스의 상징이던 ‘헤로인 시크’라는 타이틀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은, 이후 인터넷이 셀러브리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는 예고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