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오프화이트의 도쿄 아오야마 매장 오픈 행사 날, 한 소년이 버질 아블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사키 요시즈미, 일명 ‘요시(YOSHI)’.
노란색 오프화이트 벨트를 목에 두르고 나타난 그의 나이는 고작 열셋이었다.


버질 아블로는 그를 불러 함께 사진을 찍고 오프화이트 공식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는데. 이를 계기로 요시는 SNS에서 화제를 모으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킴 존스, 타카히로 미야시타 등 패션계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


요시가 운이 좋아 버질의 눈에 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남다른 패션 감각은 오랜 시간 만들어져온 것이기 때문.
“도쿄에서 제일 멋진 꼬맹이”

그는 어린 나이부터 도쿄 길거리 위 사람들의 스타일을 관찰하고 빈티지 숍을 드나들며 패션 감각을 키웠다.
래그태그(Ragtag) 같은 중고 매장을 누비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거울 셀카로 그 과정을 기록해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업로드했는데. 13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패션 센스를 확인할 수 있다.



‘평범함’이란 단어는 그에게 없었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빈티지 의류를 자유롭게 조합한 그의 코디에는 짙은 개성이 묻어있다. 언발란스한 아이템을 과감히 매치하고 레이어드해 보는 재미가 있는 스타일을 보여주던 그.
특히 볼드한 액세서리와 디스트로이드 데님을 즐겨 착용하는 등 반항미가 느껴지는 그의 ‘펑크’ 감성은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를 연상시킨다.


디자이너들이 그를 눈독 들이는 건 당연한 순리일 터. 버질과의 만남 이후 이름을 알린 요시는 GD가 착용해 한국에서 화제가 됐던 미드나잇 스튜디오 등 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으며 모델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7년, 그는 헬무트 랭의 리부트 캠페인에도 등장하며 ‘일본의 패션 키드’에서 ‘글로벌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랩도 하고, 미술도 하고, 연기도 하고”

요시는 욕심 많은 소년이었다. 패션뿐 아니라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스타가 되고 싶었던 그는 16세에 데뷔 앨범 [SEX IS LIFE]를 발매하며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커트 코베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그는 ‘Cobain’이라는 헌정곡까지 만들었는데. ‘착한 사람들은 일찍 죽는다고들 하지만’이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그를 정말 좋아하지만, 저는 일찍 죽고 싶지 않아요. 오래 살고 싶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바이크 사고로 커트 코베인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세. 허무한 죽음이었다.
밴드 데뷔를 앞두며 더 큰 세상으로 발을 내딛으려던 소년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일본의 서브컬처를 대표했던 아이콘

일본에서는 세대마다 그 시대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1990년대에는 하라주쿠 뒷골목 청년들과 니고, 후지와라, 다카하시 등의 디자이너들이. 2000년대에는 분카(문화복장학원) 패션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2010년대에는 아베 치토세 같이 다양한 스타일을 조합하는 디자이너들이 두각을 나타냈는데. 하라주쿠의 전통 스트리트 감성과 온라인 속 트렌드를 모두 아울렀던 요시는 이 마지막 세대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요시는 ‘제 2의 누군가’로 설명되지 않는다. 패션,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활동했던 그는, 일본 패션계에 기존에 없던 아이콘이었다.

“내일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해. 그래야 설령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살아있었다면 분명 훌륭한 아티스트로 성장해 세계를 누볐을 소년. 짧지만 강렬했던 요시의 생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