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뉴욕 패션 위크 런웨이에서 유독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 모델이 있었다.
어색한 걸음과 포즈. 그리고 뒤에 따라붙은 한 문장.
“일론 머스크의 딸이 런웨이에 섰다.”

사람들은 종종 이름보다 관계를 먼저 기억한다. 누구의 자식인지, 어디서 왔는지. 그 사람을 설명하기에 가장 빠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타인에 의해 정의되길 거부한다. 비비안 제나 윌슨이 그랬다.
비비안 제나 윌슨은 ‘누군가의 딸’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네포 베이비’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말로만 단정 짓기 어렵다. 런웨이에 데뷔했을 당시 일론 머스크와는 이미 절연한 상태였고, 모델 데뷔를 위한 어떤 도움도 일절 받지 않았기 때문.
이렇다 저렇다 할 논란들이 많았던 비비안 제나 윌슨의 삶. 그 길을 따라가보면 결국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일로 삶을 채워나가길 택했다
이름을 바꾼다는 건
비비안 제나 윌슨은 2004년, 일론 머스크와 작가 저스틴 머스크 사이에서 쌍둥이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이름은 ‘제이비어 머스크’. 어린 시절부터 여성적인 면모가 드러났는데, 그 모습은 아버지 일론 머스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비비안 제나 윌슨은 더 이상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길 수 없었다. 혼란은 길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숨기는 것’은 선택이 아닌 ‘버티는 일’이 되어갔다. 결국 비비안 제나 윌슨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커밍아웃을 했다.

“저는 트랜스젠더에요. 대명사는 그녀/그녀를 써요”
이 문장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을 직접 선택하겠다는 첫 시작점이 되었다.

이후 어머니인 저스틴 머스크에게 커밍아웃했고, 비비안 제나 윌슨의 어머니는 그녀의 선택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저스틴 머스크는 <틴 보그> 인터뷰에서 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비안은 언제나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아이에요.”
이 말은 단순한 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비비안 제나 윌슨이라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삶을 그려나가고 싶은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가 되던 해, 비비안 제나 윌슨은 성전환 수술을 결정한다. 그리고 같은 시기,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아버지인 일론 머스크의 성을 버리기 위해서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청원서까지 제출했다. 이 선택은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더 이상 ‘누구의 자식’으로 살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나에게 런웨이는 무대가 아닌 목소리를 내는 곳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2025 뉴욕 패션 위크. 프라발 구롱을 비롯한 네 곳의 쇼에 연이어 등장했다. 그녀가 선 쇼는 공통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알렉시스 비타르 쇼는 미스 USA 대회를 테마로, 모든 모델을 트랜스젠더로 구성했다. 프라발 구룽의 쇼 <미국에 있는 천사들> 또한 동성애와 에이즈를 주제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낸 쇼였던 것.
비비안 제나 윌슨에게 런웨이는 ‘보여지는 자리’보다 ‘말할 수 있는 자리’로 기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 정체성의 힘듦을 겪어오면서 그 경험이 사회적인 언어로 발전한 것이다. 그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자리로 런웨이를 택했고, 그녀의 바람대로 런웨이는 무대가 되어주었다.
트랜스젠더 모델 그 이후

비비안 제나 윌슨의 목소리는 젠더 문제에서 멈추지 않았다, 더 넓은 사회 전반으로 향했다.
개인 SNS, 인터뷰를 통해 미등록 이민자, 유색 인종, 소외 계층이 겪는 부당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더 많은 옹호 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

2025년, 비비안 제나 윌슨은 미국에서 열린 ‘No Kings’ 시위에 참여한 사진을 업로드했다. 당시 시위는 정부의 강압적인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평소 그녀는 SNS를 통해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많은 비판도 따라온다.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위해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점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되어가는 SNS. 그녀는 의견을 솔직하게 내세우고 외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단순한 용기라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지워지지 않는 것과 지워내는 것
비비안 제나 윌슨은 알고 있다. 자신이 일론 머스크의 자녀라는 사실이 어떤 유명세를 가져다주었는지. 하지만 동시에 그 이름에 기대지 않는 선택을 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며,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2026 밀라노 패션 위크 구찌 쇼에 참여했다. 리한나가 함께한 ‘Savage X Fenty’ 캠페인에도 등장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향력이 커진 만큼,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서 더 큰 목소리를 내길 원한다.

“어떤 사람들이 개인 전용기를 여러 대 갖고, 개인 소유의 섬을 갖고, 그 외 온갖 사치품을 누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잠을 자야 하는 세상은 있을 수 없어요.”
이제 사람들은 누구의 딸이 런웨이에 섰는지 묻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서 있는지를 본다. 비비안 제나 윌슨의 행보가 보여주는 건 자신이 믿는 것을 숨기지 않고, 그 신념을 따라 삶을 만들어가는 태도다. 숨기지 않는 것, 그리고 계속 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