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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암표범, 들어봤어?

전 세계의 고막을 파고드는 핑크팬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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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의 그래미 어워드라 불리는 ‘브릿 어워드’가 개최됐다. 노엘 갤러거, 올리비아 딘, 로제와 브루노 마스 등 내로라하는 슈퍼스타들이 상을 휩쓴 가운데, 한 신예 아티스트가 ‘올해의 프로듀서 상’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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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핑크팬서리스. 2001년생인 그녀는 24세의 나이로 해당 부문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되었다. 음악을 시작한지 5년 여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My name is pink and I’m really glad to meet you”

SNS 좀 하는 사람이라면 못 들어봤을 수가 없는 멜로디. 작년 말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챌린지 열풍을 일으켰던 곡 ‘Illegal’의 주인이 바로 핑크팬서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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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020년 말부터 대학교 기숙사에서 유튜브 튜토리얼을 보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애플의 무료 음악 제작 어플 ‘개러지밴드(GarageBand)’와 함께. 녹음 스튜디오를 빌릴 여력이 없었던 그녀는 마이크에 양말을 씌워 집에서 녹음 작업을 하는 등 ‘아마추어’ 식의 음악 활동을 이어갔는데. 제대로된 장비 하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샘플링 능력을 보여줬다. 원곡의 비트만 가져와 보컬을 얹거나, 템포를 바꿔 분위기를 변형하는 등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히트곡들을 재구성해 만든 짧고 중독성 있는 루프의 로파이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틱톡-노래

그녀의 또 다른 강점은 음색에 있다. 특유의 부드럽고 몽환적인 보컬은 달콤한 곡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자신이 작업한 곡에 노래 부르는 영상을 틱톡에 처음 업로드한 날짜는 2021년 1월. 얼굴은 글씨로 가려놓은 채 약 10초 정도 되는 짧은 길이의 영상이었지만, 그녀의 샘플링 능력과 음색이 드러나기엔 충분했다. 첫 공개곡 ‘Pain’과 뒤이어 공개한 ‘Break It Off’는 며칠 만에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그녀를 단숨에 틱톡 스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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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틱톡 스타들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였다. 그녀의 인기는 사람들이 똑같은 춤을 따라 추는 챌린지에 의한 것도, 자극적인 사연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인기의 비결은 오로지 ‘음악’ 자체에 있었다. UK 개러지, 베드룸 팝, 얼터너티브 R&B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그녀의 곡은 Y2K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트렌디한 매력이 있었고, 자극 없는 편안한 사운드는 전 세계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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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는 틱톡을 시작한지 5개월 만에, 일찍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팔로폰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팔로폰 레코드는 비틀즈와 콜드플레이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발매한 명문 레이블이다. 

그녀는 계약 이후 곧바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2021년 발매한 첫 싱글 ‘Just For Me’와 ‘Pain’이 영국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하면서 BBC의 ‘2022년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에 선정되었고, 이듬해 발매한 ‘Boy’s a Liar’는 영국 차트 2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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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시기 그녀는 큰 시련을 맞게 된다. 오른쪽 귀의 청력을 80% 정도 잃게 된 것. 아티스트로서 가장 치명적인 결함을 얻게 된 그녀는 좌절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한쪽 귀는 멀쩡하게 잘 들리니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높은 음역대를 듣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비교적 잘 들리는 낮은 음역대를 최대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선명하게 들리는 베이스에 집중해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질감의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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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23년 발매한 데뷔 정규 앨범 [Heaven Knows]은 10개국 차트에 진입했고, 그중 아이스 스파이스와 함께한 리믹스 싱글 ‘Boy’s a Liar Pt.2’는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3위까지 올랐다. 해당 곡은 1990년대 후반 EDM 하위 장르인 ‘저지 클럽’ 풍으로, 쿵쿵대는 스타카토 킥이 반복되는 가볍고 신나는 리듬이 특징인데.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어우러진 그녀의 달달한 목소리,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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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노래는 특히나 짧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래는 2분 30초를 넘을 필요가 없어요. 가사를 반복할 필요도 없고, 브릿지도 필요 없죠”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그녀의 곡들은 모두 2분 30초 남짓에 더 짧은 곡들도 많다. 해당 발언은 꽤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예술에 무지한 사람으로 몰아세웠고, 게으른 아티스트가 예술의 전통성을 파괴하는 사례로 비난했다. ‘틱톡’ 출신이라는 그녀의 배경이 한 몫 했을 것.

신체적 제약도 극복해낸 그녀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쉽게 꺾이진 않을 터. 그녀는 소신을 지키며 작업을 이어갔고, 2025년 발매한 믹스테잎 2집 [Fancy That]으로 그래미 두 부문의 후보에 오르는 등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앨범 중 세 개의 수록곡이 영국 톱 40을 차지했는데, 그중 하나가 글 초입에서 언급한 ‘Illegal’이다.

또 하나는 ‘Stateside’. 해당 곡 역시 중독성 있는 훅과 세련된 팝 사운드로 발매 직후부터 인기를 끌며 틱톡 챌린지가 이뤄졌었는데. 이번 밀라노 동계 올림픽에서 곡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일어난다.

피겨선수-올림픽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주목받은 미국의 피겨 선수 ‘알렉사 리우’가 갈라쇼에서 해당 곡을 선정한 것. 금메달을 딴 선수가 올림픽 무대에서 챌린지를 선보이는 이례적인 장면은 전 세계 SNS를 강타했다. 해당 무대를 계기로 ‘Stateside’는 엄청난 챌린지 열풍을 끌며 글로벌 스트리밍 1위까지 기록했고, 핑크팬서리스는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의 전성기가 시작됐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당당히 올해의 프로듀서 자리를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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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서리스를 단순히 ‘성공한 틱톡커’로 알고 있었다면, 그녀의 인기 비결이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음색’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녀의 노래 가사에는 결핍, 불안, 공허 등 감정으로 가득한데. 가사만 봤울 땐 축 처지고 우울한 곡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달콤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감싸진 부정적인 감정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스러운 선율로 귀에 다다른다. 한창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젠지세대가 그녀의 곡에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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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올해의 프로듀서’ 수상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가깝다. 2001년생인 그녀가 앞으로 보여줄 커리어는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을 것. 자신과 함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갈 프로듀서들을 발굴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그녀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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