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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관 속에 보그 잡지를 넣었다

자크뮈스의 옷에는 삶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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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꼭 보그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될 거예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어머니 관 속에 보그 잡지를 넣으며 다짐했다.

그날의 다짐은 훗날 현실이 된다. 소년은 프랑스 패션계의 문법을 새로 쓴 디자이너가 되었기 때문.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그의 이름은 세계적인 브랜드 ‘자크뮈스’가 되었다.

시몽-포르테-자크뮈스

저 멀리 시골에서 왔어요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그는 파리의 화려한 럭셔리 아틀리에와는 거리가 먼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말레모에서 자랐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평온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우연히 접한 장 폴 고티에 영상 한 편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가지게 됐다. 어머니는 그 꿈을 믿어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시몽-포르테-자크뮈스

열여덟 살, 파리로 향했다

시몽은 옷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파리로 향했다. 선글라스와 슬림 블랙 진, 레페토 슈즈. 당시 시몽은 에디 슬리먼과 질 샌더 스타일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길게 뻗은 실루엣과 절제된 스타일로 세계적인 패션스쿨 에스모드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던 학생에게 구식의 대학 수업은 생각보다 따분했고, 그는 머지않아 학교를 그만두었다. 짧았던 대학 생활을 끝으로 새로운 패션 경험을 모색하고 있던 시몽은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된다.

시몽-포르테-자크뮈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어린 나이에 마주한 상실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놨다.

시몽은 깊은 절망 속에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정답은 하나였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다짐했던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는 어머니 관 속에 보그 잡지를 넣으며 ‘언젠가 보그에 나오리라’ 다짐했다.

열아홉 살, 홀로서기를 결심한 그는 어머니의 성을 따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자크뮈스’라는 이름은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브랜드가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어머니는 이미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녀의 강인함, 우아함, 진정성이 시몽의 비전을 만들었고, 현재 자크뮈스의 정신을 정의합니다.”

시몽-포르테-자크뮈스

옷을 만들 돈이 없었어요

당시 파리 패션계는 시골 출신 대학 중퇴자에게 그리 살갑지 않았다. 시몽에게는 거대한 자본도, 화려한 인맥도 없었다.

대신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섰다. SNS를 통해 컬렉션을 알리고, 패션계의 문을 직접 두드렸다. 누구의 후광도 빌리지 않은 채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브랜드를 키워나갔다.

자크뮈스의 미니멀리즘 또한 가벼운 지갑 사정에서 시작됐다. 제작비가 부족해 주머니, 단추 등 디테일을 생략했던 것이 현재 자크뮈스의 미니멀한 미학을 탄생시킨 것.

시몽-포르테-자크뮈스

패션위크 데뷔, 최연소였다

2012년, 자크뮈스는 22살의 나이로 파리 패션위크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최연소 디자이너였다.

아마추어 실력이었지만 시몽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매혹적으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옷은 밝고, 부드럽고, 쾌활했다. 패셔너블하지만 복잡하지는 않았다.

꿈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와중에도 늘 어머니를 생각했다. 자크뮈스의 모든 여성복 라인은 어머니를 모티브로 했다.

시몽-포르테-자크뮈스

브랜드가 곧 저고, 제가 곧 브랜드입니다

자크뮈스 브랜드 인스타그램에는 마케팅과는 일절 상관없는 사진들이 즐비해있다. 애인과 함께 보낸 여름휴가, 최근 입었던 아웃핏을 기록하는 등 시몽의 일상 사진들이 가득하다.

그는 여타 브랜드들과 달리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게 사람들이 자크뮈스의 옷을 찾는 가장 큰 이유다.

자크뮈스를 오래전부터 지켜봐온 패션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로익 프리장’은 말했다.

“어떤 브랜드가 1인칭으로 불리는 현상은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사람들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는 브랜드는 넘쳐나지만, 자크뮈스는 달랐다. 사람들은 자크뮈스의 모든 것을 시몽 개인의 스토리텔링으로 이해하며 친근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자크뮈스가 시몽이고, 시몽이 자크뮈스인 셈이다. 혼연일체라는 말은 그와 그의 브랜드를 보고 쓰는 말일 터.

시몽-포르테-자크뮈스

“모든 일이 제가 그리던 대로 진행되는 것 같아요. 늘 야망으로 넘쳤고, 열다섯 살 때부터 이런 모습을 상상해왔습니다.”

어머니 관 속에 보그를 넣었던 소년. 그가 꿈꾸던 잡지에는 수백 번도 넘게 그의 이름이 실렸다.

시몽이 나고 자란 남프랑스의 햇살, 지중해의 푸른빛은 자크뮈스의 옷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내는 자크뮈스, 이제는 파리에서 가장 큰 독립 패션 브랜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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