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스크롤 몇 번이면 무엇이 유행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취향에서 시작된 스타일은 순식간에 트렌드가 되고, 널리 퍼진 유행은 다시 새로운 유행에 자리를 내준다.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휘발된다.
1990년대 하라주쿠 거리는 달랐다. 정해진 유행을 좇기보다 각자의 취향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채웠다. 저마다 다른 스타일이 거리 위에서 부딪히고 섞이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갔고, 아오키 쇼이치는 거리 위 젊은이들을 카메라에 담는 ‘시대의 관찰자’였다

스트리트 패션에 매료됐다
1980년대 초, 홀로 유럽으로 떠난 아오키 쇼이치. 파리 길거리를 걷던 그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옷차림의 사람들을 마주했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처음부터 사진가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자유로운 태도와 독창적인 패션에 매료된 그는 거리의 패션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첫 번째 매거진 〈STREET〉이 탄생했다. 런던, 파리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스냅을 남겼다. 패션을 런웨이가 아닌 거리에서 발견한다는 그의 시선은 이후 〈FRUiTS〉로 이어졌다.

유행을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유행이 태어나는 거리였다
1997년, 일본으로 돌아온 아오키 쇼이치는 패션의 중심지였던 하라주쿠에서 〈FRUiTS〉를 창간했다.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돌며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을 가진 거리 위 젊은이들을 촬영했다.
과감한 색채와 독특한 헤어 메이크업,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아웃핏이 그의 카메라를 거쳐 후르츠 매거진의 지면을 채웠다.

아오키는 이들을 모델처럼 연출하지 않았다. 포즈를 요구하거나 표정을 짓게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것이 진정한 스트리트 패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그 덕분에 매력적인 스냅을 완성할 수 있었다. 크고 복잡한 장비 대신 가벼운 무게의 필름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아오키 쇼이치. 찍고 싶은 사람을 마주치면 서슴없이 말을 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순간에 셔터를 눌렀다.

전 세계가 주목했다
아오키 쇼이치의 카메라에 포착된 하라주쿠의 젊은이들은 곧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후르츠 매거진은 하라주쿠를 전 세계에 알렸고, 수많은 글로벌 디자이너와 패션 관계자들의 시선 또한 일제히 하라주쿠로 향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FRUiTS〉는 새로운 패션을 발견할 수 있는 스타일링 참고서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거리가 유명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리의 개성은 흐릿해졌다.

아오키가 담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하라주쿠에는 젠트리피케이션과 패스트패션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FRUiTS〉의 인기를 따라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서브컬처의 중심지였던 거리는 점차 SPA 브랜드와 관광객을 위한 상업 공간으로 변해갔다.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된 지역이 개발되면서 중산층과 상류층이 이주하고, 기존 저소득층 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스타일을 만들어내던 거리에서, 이미 만들어진 스타일을 소비하는 거리로 바뀌며 주객이 전도된 것.
아오키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유행이 아니었다. 남들과 다르게 입고, 스스로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거리가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고 패션마저 빠르게 소비되면서, 그가 카메라를 통해 발견하던 자유로운 개성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결국 2017년, 아오키는 20년간 이어온 〈FRUiTS〉의 마지막 호를 발행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단 한마디로 설명했다.
“더 이상 거리에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라주쿠에서 사라진 것은 독특한 옷차림이 아니었다. 거리가 스스로 스타일을 만들어내던 시대가 끝난 것에 가까웠다.

오늘날 우리는 유행을 너무 빠르게 알고, 너무 쉽게 따라 입는다.
누군가의 독창적인 스타일도 발견되는 순간 수많은 사람에게 복제되고,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면 또다시 이전의 것은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 것인가’에 있다. 수많은 유행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골라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