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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사랑, 그게 문제였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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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소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한국에서 유독 오래 살아남은 소설 중 하나다. 단순히 베스트셀러를 넘어 20대 필독서처럼 소비됐고 지금도 꾸준히 읽힌다. 이유는 분명하다. 1984년에 쓰인 이 소설이 놀랄 만큼 지금 우리의 연애와 닮아 있기 때문. ‘가벼운 관계가 주는 권태’를 소설은 말한다. 

첫 장을 넘기면 대부분 당황한다. 연애 소설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니체의 ‘영원 회귀’가 등장하기 때문. 허나 이 개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문장 뜻은 인생은 한 번뿐이라 되돌릴 수 없고, 리허설도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기에 인생은 한편으로는 가볍다.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모든 게 우연처럼 흘러가기도 하기에.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도 무겁다. 단 한 번의 선택이 그대로 삶 전체가 되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이 모순 때문에 인생은 묘하게 양쪽으로 휘청인다. 

소설 내용을 들여다보자. 외과 의사 토마시는 시골에서 술집 종업원 테레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에게만 묶이는 관계는 원하지 않는다. 사랑에 진심이지만 동시에 사랑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기 때문. 그래서 테레자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사랑은 원하지만 관계 정의는 피하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으나 책임은 부담스러운 상태인 것.

반면 테레자에게 사랑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단 하나여야만 한다. 관계는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토마시의 가벼움이 테레자에게는 계속해서 불안으로 다가온다. 

처음에 토마시는 자유를 선택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유는 편안함이 아니라 공허함으로 바뀐다.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상태는 자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무 데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 그런 그에게 테레자는 불편한 존재다. 자꾸 불안하게 만들고, 책임을 요구하고, 감정을 무겁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무거움이 그를 현실에 붙잡아 둔다. 아무 의미 없는 자유보다 고통이 있더라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상태가 더 견딜 만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도 깨달았기에. 결국 가벼움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쯤에서 제목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겠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삶이 너무 무거워도 힘들지만 반대로 너무 가벼워도 인간은 버티기 힘들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지금 시대와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는 점. 요즘 같은 SNS 시대에 우리는 훨씬 더 쉽게 사람을 만난다. DM 하나로도 가까워지고 관계가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언제든 관계를 떠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 탓에 어딘가에는 더 좋은 사람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를 가볍게 만든다고 감정까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이미 마음이 생긴 상태에서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흐리게 둘수록 감정은 사라지기보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오래 남기에. 오히려 가벼운 관계는 감정을 없애기보다 끝내 정리되지 못한 감정을 더 오래 흔들리게 두는 경우가 많다. 

소설 속 한 문장을 인용하겠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의 무게에 대해 다시금 질문한다. 가벼운 관계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두들 그저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사랑하고 싶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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