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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영화를 샀다

영화 투자·배급에 찾아온 지각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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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훈-영화-빠더너스

문상훈이 영화를 샀다. 다소 낯선 상황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갑자기 영화 수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가 좋다.

그가 처음 수입한 영화 <너바나 더 밴드>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시작했지만 약 9만 8천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기존 목표였던 10만 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상영관을 독점하고 있는 수많은 대작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극장이 아니었다.

문상훈-영화-빠더너스

칸까지 직접 갔다

“늘 우리가 좇던 웃음을 찾아 직접 코미디 영화를 수입해 보려 합니다.”

문상훈은 지난해 칸영화제 필름마켓으로 향했다. 목표는 거창했다. 재밌고 싼 코미디 영화를 직접 수입하는 것. 그는 영화를 수입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수입·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에 도움받아 칸을 비롯해 LA, 홍콩 필름마켓까지 돌며 작품을 찾았다. 그 과정 자체를 빠더너스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선택한 작품이 <너바나 더 밴드>였다. 2007년 온라인 시리즈로 시작해 TV시리즈까지 이어진 캐나다 코미디 듀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 문상훈은 캠코더로 찍은 거친 질감의 화면과 즉흥적인 유머가 특징인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본인이 좋아하는 방식의 코미디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밝혔다.

단순히 ‘잘될 것 같은 영화’를 고른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튜브 영상이 내가 직접 만든 요리라면, 영화를 수입하는 과정은 내가 발견한 맛집을 소개하는 것에 가깝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잘 만들지 못한다면 잘하는 사람의 음식을 찾아 소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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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만드셨잖아요

크리에이터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예능 PD 김태호가 설립한 컨텐츠 제작자 ‘TEO’도 올해 영화 배급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헤어질 결심>, <위플래쉬>등을 국내에 소개한 ‘워터홀 컴퍼니’와 파트너십을 맺고 영화 배급에 나섰다. 첫 작품부터 규모가 남달랐다. 로버트 패틴슨과 젠데이아 주연의 A24 영화 <더 드라마>를 오는 9월 개봉으로 이끌었다. ‘TEO’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영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취향에서 시작한 문상훈과는 다르다. 김태호 PD는 기존에 해오던 컨텐츠 제작 영역을 영화로 넓히고 있다. 예능과 유튜브를 만들던 제작사가 이제는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플랫폼에 문을 두드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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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님, 이미 유명했다

이런 움직임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연예계에서 영화 수입과 투자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소지섭이다.

소지섭은 소속사 ‘51K’를 통해 예술영화 수입,배급사 ‘찬란’에 투자해 왔다. <유전>, <미드소마>,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와의 토크쇼>, <서브스턴스> 등 국내에서도 많은 팬덤을 쌓은 화제의 작품들은 그의 투자작이었다. 

특히 그의 방식은 ‘배우가 영화에 투자한다’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찬란’이 작품을 고르면 그 뒤에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는 방식에 가깝다. 과거에는 영화제에서 작품을 직접 소개 받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찬란’ 측의 작품 선정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투자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브스턴스>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국내에서 흥행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예술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땐 항상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제는 극장 엔딩 크레딧에서 소지섭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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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 학생도?

정일우 역시 최근 영화 투자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지난해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한 <투게더>. 이어서 <센티멘탈 밸류>를 선택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9개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그는 이 영화의 국내 개봉에 투자자로 참여하며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작품 선택 기준도 흥미롭다. “이 작품을 더 많은 국내 관객이 봤으면 좋겠다.”라며 본인이 느끼는 직관에 따른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투자 수익보다는, 마음이 동한 작품을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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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하지, 투자는 왜?

공통점은 꽤 분명하다. 이들 모두 영화 산업의 전문적인 배급사나 투자사가 아니다.

문상훈은 크리에이터, 김태호는 예능 PD, 소지섭과 정일우는 배우다. 그런데 자신이 잘하는 일을 영화와 연결하기 시작했다. 문상훈에게는 컨텐츠를 고르고 소개해 온 경험이, 김태호에게는 수많은 방송 컨텐츠를 기획하고 대중에게 전달해 온 경험이 있다. 배우들에게는 누구보다 많은 시나리오와 작품을 접한 경험이 쌓여 있다.

결국 영화의 ‘제작’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의 ‘선택’에 자신들의 감각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문상훈-영화-빠더너스

팬덤, 영화관으로

여기에 연예인만이 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관객과의 직접적인 연결이다.

배급사가 아무리 좋은 영화를 들여와도 관객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극장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반면 문상훈에게는 ‘빠더너스’라는 채널이 있고, 김태호에게는 예능 프로로 쌓아온 컨텐츠 팬층이 있다. 배우들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알릴 수 있다. 실제로 문상훈은 <너바나 더 밴드>를 수입하는 과정부터 칸영화제 방문, 작품 선정, 개봉 준비까지의 과정을 유튜브 컨텐츠로 담았다. 영화 자체뿐 아니라 ‘어떻게 이 영화를 가져오게 됐는지’까지가 하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영화를 수입하는 일이 곧 컨텐츠가 되고, 그 컨텐츠를 본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구조다.

 

문상훈-영화-빠더너스

지각 변동이다

과거 연예인의 영화 참여라고 하면 작품에 출연하거나 제작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가 익숙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어떤 영화를 국내에 들여올지 직접 고르고, 투자·배급하며 자신의 채널과 팬덤을 통해 관객에게 소개한다. 문상훈은 칸에서 영화를 발견했고, 김태호는 컨텐츠 제작사의 영역을 극장으로 확장했다. 소지섭은 오랫동안 예술영화에 투자하며 작품을 골라 왔고, 정일우는 자신의 마음을 동하게 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영화를 직접 만드는 사람만 영화 산업에 참여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어떤 영화를 보여줄 것인지 고르는 사람들까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의외로 그 안에서 연예인들의 이름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본업도 잘하는데, 영화 고르는 센스까지 보여주는 사람들. 

이들의 행보가 영화 산업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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