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터레스트가 2026년 패션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포엣코어(Poet Core)’를 제시했다.
말 그대로 ‘시인’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스타일에, 시나 소설을 즐겨 읽을 것 같은 지적인 분위기가 핵심이다.
잘 다려진 셔츠보다 자연스럽게 구김이 간 셔츠, 무심하게 걸친 안경. 전체적으로 힘을 뺀 여유로운 실루엣이 중요한데. 부스스해 보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멋은 살아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포엣코어, 작년에 핫한 밈으로 떠올랐던 ‘퍼포머티브 메일(Performative Male)’과 유사해 보인다.

퍼포머티브 메일이란 한 손에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말차 음료를. 여기에 줄 이어폰, 안경, 필름 카메라 등 ‘느낌 있어 보이는’ 아이템으로 치장한 남성을 뜻한다. ‘치장’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서 느꼈겠지만, ‘보여주기 식 연출’이라며 온갖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요즘 떠오르는 ‘포엣남’의 인식은 많이 다르다. ‘느좋남’을 일컫는 새로운 용어가 된 것.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둘.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가 아이러니하다.
‘진짜’인 포엣남은 느좋남이 되고, ‘가짜’인 퍼포머티브 메일은 조롱거리가 되는 걸까.

진짜와 가짜는 누가 정하는 걸까
그들의 취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설령 가짜 취향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비난할 자격도 없다.

‘보여주기 식 연출’은 가짜 취향인가
원래 취향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따라 하면서 길러진다. ‘저 스타일 멋지다.’ ‘나도 저런 이미지를 갖고 싶다.’ 누구나 이러한 생각들을 거쳐 타인을 흉내 내고, 여러 시도를 통해 지금의 취향을 갖게 되었을 터.
물론 그 흉내 내기 퍼포먼스가 실제 자아를 잠식할 정도로 타인의 시선을 위함이라면 문제가 있다. 보여주기 식 삶만 이어가는 것은 진정한 정체성 확립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퍼포머티브 메일이 그토록 비난받은 이유 역시, 그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과한 연출’이라고 여겨져서일 것.

하지만 필자는 그들의 과한 연출을 응원한다.
타인과 비슷한 옷을 입고, 최대한 튀지 않는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을 안전하다고 여기는 한국. 스타일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 전반에 있어서도 남들과 비슷한 ‘무난한’ 루트를 따르는 게 당연한 사회 흐름 속에서, 보편적으로 고착된 한국 남성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는 그들의 퍼포먼스가 오히려 용감하고 멋있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연출의 자유가 있다
누군가는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쿨한’ 무드를 추구하기도, 누군가는 소소한 아이템까지 섬세하게 신경 쓰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설령 그것이 연출일지라도, 오히려 그들의 퍼포먼스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