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출신. 동향 사람들은 말한다.
“너 인천 출신이야? 형만 믿어”
타지 사람들에게 인천은 인터넷 밈으로 번지며 이미지가 마냥 좋지만은 못한 상황. ‘마계 인천’이라는 별명을 안고 있다. 악의적인 비방에 많은 인천 시민들이 곤란해졌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 지역감정은 당연한 것이 아니니 친분이 있더라도 단어를 꺼내지는 말자.
그러나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다 인천은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쩌다 사람들이 살게 되었는지. 지명은 왜 인천인지.

어질 인, 내 천
인천의 한자는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이 포함되어 있다. 어진 사람들이 있는 내라는 의미일까. 지금의 거친 이미지와는 다른 인천은 어떻게 인천이 되었을까.
인천이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미추홀’이다. 홀(忽)은 성을 뜻하는 고구려와 백제의 지명어라고. 광개토 대왕릉비에 ‘미추성’이라는 단어가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미추홀이 얼마나 중요한 성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고려 시대 인종 때가 되면, 인천의 ‘인(仁宗)’을 볼 수 있다. 인종의 어머니인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해 ‘인주(仁州)’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태종 13년, ‘주’자를 가진 군, 현의 이름을 모두 ‘산’ 혹은 ‘천’으로 개정하라 하여 ‘인천’이 되었다. 바로 이날, 1413년 10월 15일이 ‘인천’ 탄생의 날이고, 지금도 ‘인천 시민의 날’로 제정되어 있다.
마계? 시작은 야구였다
인천 야구팀, SSG 랜더스. 마계는 그 전신인 SK와이번스 시절에 생긴 별명이다.
때는 2009년, KBO 플레이오프 5차전이었다. 인천 문학경기장 위로 콰직 번개가 내리쳤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람들은 이미지를 보고 ‘마계 인천’이라고 불렀다. 지역의 거친 특성이 아닌 사진을 보고 그렇게 불리기 시작한 것.

‘운봉공고, 운산공고, 항도공고’. 인천 내에서는 도봉산으로 불렸던 악명 높은 고등학교들이다. 문제아들이 모였던 이 학교에서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며 ‘마계’의 이미지가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또 하필이면 한창 인천을 거점으로 인터넷 방송인들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하던 때였던 터라 ‘인천은 거칠다’라는 말에 불을 붙였다.
내부에서는 이제 제법 유머로 듣고 넘기는 편이라고. ‘마계 인천 페스티벌’이 있을 정도로. 그렇다고 마음 편히 사용하는 건 절대 금기시하자.
어쩌다 사람이 모였나

인천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광활한 서해 바다를 이어주는 ‘제물포’가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 해상무역으로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만큼 무역 중심지였으니 여기저기서 사람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수도 서울 옆 제2의 도시로서, 또 1960년대 이후 경인 공업지대의 핵심으로서 급격한 산업화를 이룩하며 인재들이 인천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곳으로 대한민국으로 오는 관문이라는 입지를 견고히 하고 있다. 그 당시 조선 땅을 밟기 위해 제물포를 찾았던 것처럼.
인천이라는 이름 속 담긴 어질 인(仁) 자. 그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이곳 인천은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