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영 환경이 멀티플렉스보다 조금 떨어지더라도 예술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적어도 이 극장 안에서만큼은, 스크린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서로를 방해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극장은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기 전까지 상영관의 불을 켜지 않고, 관객들 역시 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서둘러 일어나지 않는 그 짧은 침묵의 시간은, 어쩌면 영화가 남긴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작은 의식에 가깝다.
하나의 공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칙들이 필요하다. 가령 미술관에서는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큰 소리를 내거나 휴대폰 소리를 울려선 안 된다. 서로의 경험을 해치지 않기 위해 배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영이 시작되면 직접적으로 제재할 사람이 없어서인지, 영화관에서는 그런 경계가 종종 쉽게 무너진다. 작은 화면의 빛이 켜지고, 속삭임이 이어지고, 어떤 이들은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 순간 영화가 만들어내는 집중의 시간은 조금씩 흐트러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예술영화관을 찾는다. 적어도 그곳만큼은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영화라는 매체를 특별하게 만드는, 아주 작고 사소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한국영상자료원 : MELVILLE x MANN x REFN
한국영상자료원이 이번에는 장 피에르 멜빌, 마이클 만,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범죄 느와르를 한자리에 모았다. 세대도, 활동한 지역도 다른 세 감독. 그러나 이들은 아웃사이더들이 따르는 엄격한 코드에 대한 매혹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세 감독은 기질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아웃사이더의 삶을 안과 밖에서 들여다보며 범죄 느와르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에서 활동해온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르를 확장해왔다.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협업하며 그들의 스타 이미지를 새롭게 빚어냈고, 인상적인 영상과 사운드로 장르영화에 또 다른 깊이를 더했다. 이들의 영화에는 늘 죽음과 운명에 대한 질문이 흐른다. 고독하고 쓸쓸한 남성 인물들을 통해 삶의 끝과 선택의 무게를 끈질기게 응시한다.

“허물어진 아파트에서 한 고독한 암살자가 거울 앞에 서서 트렌치코트와 페도라를 차려입는다. 그는 모자의 챙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린 뒤, 계약을 수행하러 길을 나선다. 말끔한 은행 금고 안에서는 한 보석 도둑이 거대한 금고 문을 마주하며 방 안을 훑어본다. 곧 시작될 작업을 준비하듯 공간을 점검한다.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에서는 한 도주 운전사가 손목시계를 운전대에 고정하며, 맞은편에서 벌어질 침입과 시간을 맞춘다. 폭풍 전야의 고요 속에서 이 그림자 같은 인물들은 의식과 정밀함, 고독으로 자신을 단단히 무장한다. 이 어둠의 형상들이야말로, 본 프로그램이 대화의 장으로 불러낸 세 감독의 세계를 이루는 핵심이다.”
3월 12일 ~ 4월 7일, 한국영상자료원

빔 벤더스 <파리, 텍사스> 개봉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사이, 붉은 모자를 쓴 트래비스가 사막에서 걸어 나온다. 기억을 잃고 말조차 잊은 그는 동생 월트의 도움으로 4년 만에 아들 헌터와 재회한다. 서먹했던 부자는 4년 전 사라진 아내 제인을 찾기 위해 텍사스 휴스턴으로 떠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도로, 그리고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인물들의 감정은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영화는 거창한 사건보다 상실과 회복, 그리고 다시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이 작품이 여전히 특별하게 남아 있는 이유다.
이번 상영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식 개봉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풍경과 천천히 흐르는 이야기의 리듬을 스크린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아마도 우리가 잊고 있던 영화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할 것이다.

”열여섯 살의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처럼 아름다운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금발 머리와 핑크색 스웨터는 마치 환영처럼 아직도 눈앞에 남아 있다. <파리, 텍사스>가 내게 정확히 무엇을 남겼는지, 왜 그토록 강렬했는지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영화 속 풍경과 사진이 지닌 힘에 대해, 평생 잊지 못할 감각을 남겼다.”

구로사와 기요시 <차임> 개봉
서스펜스의 대가, 구로사와 기요시. 그의 신작 <차임>이 드디어 국내에 도착했다. 그는 <큐어>, <회로>, <절규>로 이어지는 이른바 ‘공포 3부작’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차임>은 요리 교실 강사 마쓰오카가 한 수강생으로부터 ‘종소리가 들린다’는 기묘한 말을 듣게 되면서 시작된다.
거창한 장르적 장치보다 공간과 분위기, 그리고 인물의 심리를 통해 긴장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그의 초기 대표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퍼져나가고, 그 감각이 점차 현실을 잠식하는 과정은 구로사와 기요시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공포의 본질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이번 작품은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짧지만 밀도 높은 러닝타임 속에서 응축된 공포와 긴장을 선보이며, 감독은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르를 확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일상에 균열을 내는 그 불길한 종소리를, 이제 당신이 극장에서 직접 마주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