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뮈스의 26FW 컬렉션 ‘Le Palmier’는 야자수를 뜻한다. 이는 디자이너 시몽 자크뮈스가 패션을 배우기 위해 막 파리에 도착했을 무렵을 떠오르게 한다. 낯선 도시에서 그를 붙잡아두었던 것은 거창한 래퍼런스보다도, 그의 천진난만함과 무심한 창의성을 자극했던 익숙한 이미지였다. ‘Le Palmier’는 그 시절의 감각을 기념하는 이름이다.



이번 시즌의 출발점은 그의 가장 사적인 장면에서 비롯됐다. 시몽 자크뮈스 딸의 야자수 모양 포니테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풍경은 곧 컬렉션의 핵심 이미지로 확장되며, 자크뮈스 특유의 형태와 분위기로 번역됐다. 쇼 초대장에는 엉킨 머리를 풀기 위한 굵은 빗과 야자수 헤어스타일을 연출하는 방법이 함께 담겼다.

초대장 : 빗과 함께 몇 가지 동작을 따라 하면 성공적인 야자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컬렉션 전반에는 자연스럽고 조각적인 아름다움이 흐른다. 1950년대 오트 쿠튀르의 구조적인 형태, 1990년대의 관능적인 태도, 그리고 1980년대 프랑스 영화나 테크니컬러 TV 쇼에서 느껴지던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가 겹겹이 포개진다. 서로 다른 시대의 감각은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생기 있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번 컬렉션은 단순한 회고에 머무르지 않는다. 추억은 출발점일 뿐, 시선은 분명 현재를 향해 있다. ‘Le Palmier’는 시몽 자크뮈스의 어린 시절을 장식했던 장난기 가득한 아이콘들 사이에서도, 언제든 무대의 중심에 설 준비가 된 여성을 기념한다.

쇼가 열린 장소 역시 의미를 더했다. 자크뮈스는 2017년 9월, 18SS 컬렉션 ‘La Bomba’를 통해 피카소 미술관에서 한 차례 쇼를 진행한 바 있는데, 당시의 쇼는 메종의 방향성을 결정지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8년 만에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온 이번 선택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하나의 순환처럼 읽힌다. 달라진 시선으로 같은 장소를 다시 마주한 자크뮈스는 이번 시즌, 또 하나의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강인한 여성, 50년대의 스타일, 80년대의 정신, 그리고 90년대의 관능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 시몽 자크뮈스
그의 의도는 컬렉션 전반의 실루엣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장된 볼륨과 조각적인 테일러링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펜슬 스커트는 엉덩이 부분의 바스크 디테일과 플레어 주름 밑단으로 형태를 강조했고, 재킷은 라펠 없는 칼라와 래글런 숄더, 잘록한 허리로 구성됐다. 이러한 실루엣은 오버사이즈 모자가 더해져 극적인 균형을 이루었다.


이번 시즌, 시몽 자크뮈스의 무드보드에는 헬무트 뉴튼이 촬영한 흑백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의 딸, 팔로마 피카소가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 이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원 숄더 드레스는 컬렉션의 정점을 장식하며 쇼의 피날레를 마무리했다. 노출된 오른쪽 가슴을 와인잔으로 가린 채 런웨이를 걷는 장면은 헬무트 뉴튼 특유의 긴장감과 유머를 그대로 불러왔다.
26FW 컬렉션 곳곳에는 여전히 자크뮈스의 어린 시절이 스며 있다. 컨페티가 흩뿌려진 재킷과 파티 모자를 연상시키는 액세서리는 장난스럽고 솔직한 감정을 불러낸다. 이 컨페티 장식 역시 피카소의 1961년작 <Le Clown>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자크뮈스는 이번 시즌, 기억 속 이미지를 현재로 불러냈다. 그러나 ‘Le Palmier’는 추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감각을 오늘의 실루엣으로 다시 세우는 방식이며, 시몽 자크뮈스가 여전히 가장 자신다운 언어로 패션을 말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