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릭 오웬스(Rick Owens)가 26FW 여성 컬렉션 ‘TOWER’를 통해 사랑과 희망을 향한 메시지, 그리고 권력과 통제에 대한 시대적 풍자를 패러디 방식으로 함께 담아냈다. ‘사랑의 사원, 빛의 탑(Temple of Love, Tower of Light)’이라는 부제처럼, 이번 컬렉션은 사랑과 희망, 그리고 강인한 보호의 메시지를 런웨이에 투영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소재의 혁신이었다. 이번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타워 시스(Tower Sheaths)’ 드레스는 광택 있는 불 레더와 강철보다 5배 강한 내구성을 지닌 케블라(Kevlar) 소재를 사용했는데. 이 기능성 소재는 1952년부터 코모에서 3대째 내려오는 가족 경영 직물 공장에서 탄생했다. 보호 장비에 주로 사용되는 기능성 섬유를 하우스의 언어로 끌어온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우터 웨어의 구조적인 미학과 소재도 눈길을 끌었다. 짧은 크롭 재킷과 긴 베스트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레이어링은 착용자를 하나의 견고한 ‘탑’처럼 보이게 설계됐다. 여기에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산타 크로체 술라르노에서 제작된 왁시 카우하이드 레더와 부드럽게 브러싱 및 워싱 처리된 알파카, RWS 인증 울 소재를 사용해 밀도감을 더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일본산 인디고 캔버스는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워시 하우스에서 물 사용을 최소화하고 일부를 재활용하는 공정을 거쳐 가공됐으며, 모든 데님 워싱 과정은 ZDHC 인증을 받았다.
“컬렉션에 사용된 모든 가죽은 식품 산업의 부산물을 재활용했다.”

글로벌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역시 빛을 발했다. 브랜드와 10년간 호흡을 맞춰온 사루타냐의 핸드 크로셰 니트, 파리 기반 텍스타일 아티스트 줄리아 트로피모바와 함께한 핸드 터프팅 재킷, 런던 기반 디자이너 루카스 모레티와 함께 50시간 이상 수작업으로 엮어 만든 마크라메 가운 등은 릭 오웬스의 피스 하나하나가 단순한 옷을 넘어 명상적인 예술의 영역에 닿아 있음을 증명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은 베를린 기반 디지털 크리에이터 피가 링크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사회적 현실에 대한 저항과 반응을 담아내는 그의 시선은 릭 오웬스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이번 컬렉션은 전설적인 독일 배우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를 향한 오마주가 짙게 깔려 있다. 끝까지 나치에 저항했던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 것이다. 릭 오웬스는 그녀의 삶을 ‘도발적인 섹시함’, ‘전시의 헌신’, 그리고 ‘절제된 카바레 공연’의 세 단계로 정의 내렸다. 과거 디트리히가 착용했던 스완스다운(Swansdown) 코트를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재해석한 염소 가죽 코트를 선보여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강인한 투지와 도덕성, 그리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했던 마를렌 디트리히의 삶. 릭 오웬스 또한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옷이라는 가장 가까운 ‘성전’을 제안하며, 보호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묵직하게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