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밴드 붐이 음악 시장을 한바탕 휩쓸었다. 틱톡을 중심으로 테크노, 하우스 같은 전자음악도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오직 힙합만이 2020년대에 들어서 ‘죽었다’라는 키워드와 함께하고 있다.
힙합도 부활을 꿈꾸는 순간이 왔다. 기회가 생겼다. 힙합이 가지는 융통성 넘치는 장르적 허용이 이번에도 무기가 되었다.
어디 붙여놔도 잘 어울리거든

록 음악이 몰락기로 향해갈 때, ‘랩 메탈’, ‘뉴메탈(Nu metal)’과 같은 랩이 가미된 록 음악이 등장했다. ‘Rage Against The Machine’, ‘린킨 파크’등이 대표적이었다. 그 자리는 힙합이 꿰찼다.
90년대 힙합 골든 에라, ‘칸예 웨스트’와 같은 힙합 스타들의 등장으로 힙합은 메인스트림에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이후 트랩 음악과 같은 세부 장르들이 장르 음악의 왕좌 자리를 이어나갔다. 2020년 힙합이 고점을 찍을 때 역시 ‘이모 랩’, 혹은 팝 펑크 록 사운드가 가미된 힙합 음악이 유행이었다. 태도와 아웃핏은 ‘펑크’였고. 골수 힙합 팬들은 이를 힙합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힙합 팬들과 힙합 플레이어들이 즐기는 행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메인스트림에 자리 잡을 때도, 고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 때 생명줄 연장을 할 때도 크로스오버가 용이한 장르 특성이 빛을 발했다.
장르 융합이 쉽고 편한 만큼, 하위 장르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은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이 향한 곳은 메인스트림 힙합의 마지막 선택지였던 머니 코드를 중심으로 한 팝 펑크스타일이었다. 자연스레 Y2K 리바이벌과 어우러지며 밴드 음악이 힙합의 자리를 노렸다.

밴드 붐, 힙합 몰락?
‘오아시스’, ‘그린데이’, 한국 아티스트로는 ‘검정치마’. 대 밴드 붐이 시작됐다. 매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역대급 인원을 기록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던 올드 밴드들이 대거 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빌보드 상위권에 힙합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오르지 않자 록이 몰락할 때처럼, “힙합은 죽었다”라는 구호가 음악 평론가부터 대중들 사이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밴드 음악과 전자 음악이 빈틈을 차지했고, 어느 순간 힙합은 소수만 즐기는 장르가 되었다.
잠깐이었다. 저점은 고점으로 향하는 시작점이라고. 힙합은 언제나 변화를 통해 살아남았다. 록, 전자음악 어디에 붙여놔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자음악’과 손을 잡은 셈. 2020년쯤, 멜로디컬 한 힙합 사운드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팝 펑크 밴드 사운드 혹은 하이퍼 팝이었다. 팝 펑크는 그린데이와 같은 밴드들을 재조명하며 밴드 음악의 부활을 야기했다.
언더그라운드에 주목했다

하이퍼 팝은 언더그라운드로 내려갔다. 플레이보이 카티의 ‘WLR’, ‘Miss The Rage’처럼 ‘레이지’ 음악이 꾸준히 장르 팬들의 마음을 울렸지만, 밴드 음악 그 이상의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서도 ‘뉴재즈’, ‘플럭앤비(Pluggnb)’ 같은 다양한 갈래가 나왔다.
한 우물만 파라고 했던가. 하이퍼 팝을 중심으로 한 찰리 XCX의 앨범 [Brat]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 도파민 중독자들이 틱톡을 중심으로 하이퍼 팝과 하드 테크노를 즐겨 듣기 시작했다. 전자 음악의 대 유행이 오나 싶었다. 웬걸 [Brat]이 언더그라운드를 배회하던 하이퍼 팝 기반의 힙합 아티스트들을 구원해 줬다.

그녀가 샤라웃하는 아티스트들이 모두 건너건너 연관되어 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메인스트림으로 가는 발판을 다시기 시작했다. 디지코어로 파생된 힙합 장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힙합씬의 시선이 메인스트림에서 언더그라운드로 넘어갔다고 얘기하는 게 더 옳겠다.

하이퍼 팝과 힙합을 연결고리로 밀고 나갔던 투홀리스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디지코어’라는 형태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넷스펜드(Nettspend)’, ‘페이크밍크(Fakemink)’, ‘에스디키드(Esdeekid)’. 장르가 워낙 다양하게 섞인 탓에 힙합 이야기에 등장하면 위험할 것 같지만 ‘제인 리무버(전 dltzk)’도 큰 몫을 했으니까 언급한다.
그러나 빌보드 시장은 현재 팝의 향연이다. 과거처럼 힙합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는 시대는 아니다. 메인스트림에 ‘장르 음악’이 우두커니 서있지 않다는 점이 힙합이 유행이라는 모든 말을 아이러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메인스트림도 아닌 빌보드에 못 올라가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이 “힙합이 죽었다”라는 말을 되돌렸냐고 질문한다면, “살렸다”고 답하고 싶다.

이유인 즉슨 “마이크로 트렌드” 시대이기 때문.
정보가 다양해지고, 알고리즘이 정확해질수록 음악, 패션 시장은 ‘니치마켓’을 노리고 있다. 나만 아는 아티스트, 나만 가지고 있는 패션 아이템. 그러나 대량 생산의 시대에 ‘나만’이라는 단어가 성립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취향이 같은 사람이 모이는 게 중요하다. 그 취향이 알고리즘을 통해 확고해지는 시대니까. 지금 이 시점에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파이를 가장 넓게 가지고 가는 장르가 ‘힙합’이다. 디지코어가 힙합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글의 내용 자체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디지코어를 향유하는 대다수가 ‘릴 우지 버트’, ‘플레이보이 카티’, ‘드레인 갱’ 등 힙합이라 불리던 아티스트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코어도 힙합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끔 자신을 래퍼라고 칭하지 말라는 아티스트가 있지만, 한국에서 이쪽 장르의 대표 아티스트 ‘에피’조차 래퍼라는 수식어를 뜯어내지 못한다.
패션과 음악은 상생 관계, 구찌로 향한 스타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페이크밍크와 넷스펜드를 젊은 피의 상징으로 세웠다. 넷스펜드는 현시점 원탑 브랜드 ‘프라다’의 런웨이를 걷기도 했다.

한국도 이 흐름을 이어가는 중이다. 레이블 KC의 멤버들, EK, 에피, 시스템 서울 등. 하이퍼 팝의 과장된 사운드와 테크노, 하우스 음악이 가미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언더그라운드와 메인스트림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10년대 K-POP 향수를 자극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는 것도 한국만의 재미 포인트다.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쇼미더머니12>에서 외모뿐만 아니라 음악으로도 주목받은 ‘나우아임영’의 사운드도 이 기류에 속해있다. 사람들이 어떤 장르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0년 넘게 같은 음악이 나오는 홍대 클럽의 사운드를 바꾸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힙합 뉴 에라가 온 것이 아닐지.
이제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시대에 장르를 나누고, 어떤 장르가 트렌드인지 겨루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언급한 대로 ‘마이크로 트렌드’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서 시장을 지켜보는 것도 음악을 즐기는 재미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 치열한 마이크로 트렌드들 사이에서 어떤 장르가 힘을 받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인사이트도 달라질 터. 팝 음악이 빌보드 차트를 장악하는 지금,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우리답게 여러 장르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주목하며 즐거운 음악 생활의 한 페이지를 채워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