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반복해서 듣는 알앤비 플레이리스트가 지겹다면, 시선을 돌려 ‘인도 알앤비’에 주목해 볼 타이밍이다. ‘인도’와 ‘알앤비’. 생경한 조합에 거부감부터 든다면 잠시 그 경계심을 내려놔보자. 현재 인도 알앤비 씬에서는 주목해야 할 여성 아티스트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흔히 ‘인도 영어’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악센트는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하나같이 부드럽고 달달한 음색으로 듣는 순간 고막을 녹게 만든다. 신선한 알앤비 맛을 느끼고 싶은 당신을 위해, 지금 가장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인도 알앤비 여성 아티스트 3인을 소개한다.
메리 앤 알렉산더 (Mary Ann Alexander)

인도 남부 케랄라에서 자란 메리 앤 알렉산더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성장했다. 현지 영화 음악계에서 활동하던 뮤지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녹음실을 놀이터 삼아 아버지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음악적 귀를 틔웠다.
“왜 우린 더 이상 사랑스럽고 귀여운 알앤비 음악을 안 만드는 걸까? 그래서 내가 만들어봤어”
메리는 2024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자작곡을 부르는 영상으로 단번에 주목받았다. 현재 600만 조회수를 기록할만큼 꾸준히 인기를 얻는 중이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마일드한 버전의 시저’가 떠오른다. 그만큼 독보적인 음색을 자랑하는데. 실제로 시저(SZA)에게 여러 번 샤라웃을 받으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그녀의 주 무기는 클래식한 알앤비와 재즈의 매력을 현대적인 사운드로 매끄럽게 가공해 내는 능력이다. 귀를 부드럽게 감싸는 음색을 가졌지만, 멜로디 위에 얹어지는 가사의 표현력만큼은 단단한 힘이 있다. 이러한 재능은 글로벌 프로듀서들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도자 캣과 조지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린든 제이와 협업하여 데뷔 EP [Love Or A Lesson]으로 리스너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베야 (Véyah)

인도에서 태어나 뉴욕 외곽에서 성장한 베야는 방구석에서 찍은 짧은 보컬 커버 영상을 틱톡에 올리며 단숨에 수많은 팔로워를 끌어모았다. 동양과 서양의 색채가 묘하게 섞인 독특한 사운드클라우드 작업물들은 리스너들 사이에서 빠르게 공유되었고,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본 2000년대 알앤비 레전드 제이 션의 눈에 띄어 그의 레이블에 전격 영입되었다. 현재는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중.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독보적인 보컬 테크닉에 있다. 트렌디한 팝 알앤비 스타일로 세련되게 노래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남아시아 전통 보컬의 꺾기 창법을 매끄럽게 연결해 버린다. 데뷔곡 ‘Almost’에서는 제레미 스칼러 같은 베테랑 프로듀서들과 호흡을 맞추며 대중적인 감각까지 증명해 냈다.
네티즌들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과감하고 솔직한 메시지다. 20대 여성으로서 마주하는 서툰 감정들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가사로 거침없이 풀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2023년 발매된 싱글 ‘Better Than the Boys’는 현재 스포티파이에서 600만 회 이상의 재생 수를 기록하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란지 (RANJ)

뭄바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란지는 인도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에너제틱한 뮤지션이다. 보수적인 가정환경과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프레임을 깨부수고 이를 자신만의 강렬한 음악적 에너지로 분출해 낸다.
그녀의 음악적 정점을 보여주는 결과물은 최근 발매한 데뷔 믹스테이프 [27 CLUB]이다. 요절한 천재 음악가들을 상징하는 나이인 ’27세’를 모티브로 삼아, 과거의 방황을 끝내고 새로 태어난다는 서사를 무려 27개의 트랙으로 촘촘하게 엮어냈다. 현지 천재 프로듀서 클리프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과 손잡고 영어와 타밀어를 자유자재로 매치하며 랩과 보컬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사 역시 거침이 없다. 여성의 욕망이나 현실적인 사회적 이슈들을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 간혹 너무 대담한 가사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평단으로부터 “알고리즘에 맞춘 짧은 음악들이 판치는 시대에, 자신의 예술성을 타협 없이 밀어붙인 명반”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WHO YOU ARE’나 ‘2 good’ 같은 트랙을 들어보면 현재 그녀가 주목받는 이유를 단번에 납득할 수 있을 것.

물론 아직 인도 알앤비가 글로벌 주류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흐름으로 확실히 안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들은 단순히 서구권의 알앤비를 모방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가장 트렌디한 문법으로 해석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탄탄한 실력과 독창성으로 무장한 신예 인도 아티스트들이 하나둘 등장하는 지금, 새로운 글로벌 사운드의 거대한 시작을 함께 해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