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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밑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 자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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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홍대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시작했던 밴드 ‘자우림’. 그 출발점은 홍대 인디클럽 블루데빌에서 활동하던 밴드 ‘미운오리’였다.

당시 목요일 무대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팀들이 서는 자리였는데. 어느 날 선배 뮤지션이었던 유앤미블루가 갑작스레 토요일 공연을 비우게 되면서, 미운오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날 관객석에는 영화 <꽃을 든 남자>의 황인뢰 감독이 앉아있었다. 원래는 유앤미블루의 공연을 보러 온 자리였지만, 무대 위 미운오리의 음악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이들은 영화 사운드트랙을 맡게 되는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인디 씬의 작은 무대에서 더 넓은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 열린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 올릴 공식적인 이름이 필요했다. 제작사 측은 아마추어스러운 ‘미운오리’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하길 원했고, 김윤아가 급히 새로 지은 이름이 바로 ‘자우림’이었다.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 몽환적이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동시에 강렬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이 낯선 단어는 곧 밴드의 정체성이 되었다. 몽환과 현실, 서정과 폭발, 고요와 혼돈이 공존하는 공간. 자우림은 그 이름을 빌려 자신들만의 숲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곡이 바로 ‘Hey Hey Hey’였다. 가요톱10에서 1위 후보까지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는 한국에서 록 밴드가 공중파 방송에서 1위 후보에 오른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자우림은 단숨에 ‘언더’와 ‘메인스트림’을 가로지르는 이름이 되었다. 

현실은 늘 순탄치만은 않았다. ‘Hey Hey Hey’가 끝나면, 다른 곡들에는 관객의 반응이 쉽게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

그때, 다시 한번 자우림에게 우연이 찾아왔다. 프링글스 TV 광고 모델로 발탁된 것이다. 광고를 통해 흘러나온 ‘매직 카펫 라이드’는 대중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지금까지도 자우림을 대표하는 곡으로 남았다.

이후에도 자우림의 음악은 자연스레 대중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2005년, 펩시콜라 TV CF를 통해 알려진 ‘하하하쏭’ 역시 그랬다. 광고라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를 통과하며, 자우림의 노래는 ‘듣는 음악’을 넘어 ‘기억 속의 음악’이 되었다. 인디 밴드의 노래가 사람들의 일상과 겹쳐지는 순간, 자우림은 더 이상 특정 씬에만 머무는 이름이 아니게 되었다.

자우림의 성공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우연을 붙잡아 자기 세계로 밀어 넣는 힘은 분명했다. 인디 신의 거친 에너지 위에 김윤아의 선명한 언어가 얹혔고, 록과 포크, 사이키델릭을 가로지르는 사운드는 ‘언더’와 ‘메인스트림’의 경계를 무력화시켰다. 자우림은 데뷔와 동시에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 그 낯선 이미지처럼, 자우림은 늘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확장해왔다. 우연으로 시작했지만, 결코 우연에 머물지 않았던 밴드 자우림은 그렇게 한국 대중음악 안에 하나의 숲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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