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 작가는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를 말한다 커버이미지
film & tv

박해영 작가는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를 말한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모자무싸>

URL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공유해보세요!

최근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종영했다.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 미쳐버린 인간이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는 현대인이 품고 있는 열등감을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내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줄곧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온 박해영 작가는 이번에도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모두에게 12편의 세레나데를 건넸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모자무싸>에 이르기까지. 박해영 작가는 화려한 성공이나 극적인 사건에 대해 쓰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열등감과 결핍, 외로움에 주목해왔을 뿐. 작중 인물들은 대부분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다. 빚에 시달리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며 가족의 품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작가는 그러나 그들을 불행 속에 방치해두지 않는다. 인물들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때로 조용히 곁을 내어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다만 그 과정은 일반적인 드라마와 다르다. 일어설 수 있는 이유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상대의 도움을 받아 결국 ‘스스로’ 극복해내기 때문. 

2018년 방영된 <나의 아저씨>는 박해영 작가의 세계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주인공 이지안은 빚과 폭력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박동훈 역시 회사와 가정, 인간관계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가는 중년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누구보다 정확하게 상대의 고통을 알아본다. 극 중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행복하게 살아. 그게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이야.”라고 말한다. 거창한 해결책도 아니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그저 서로를 보듬으며 수렁에서 나와 겨우 평균을 찾아갔을 뿐.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의 해방일지> 역시 비슷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매일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반복되는 삶을 사는 염씨 삼 남매. 그들은 특별히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러나 삶의 무게에 지쳐 있다. 특히나 염미정은 자신이 왜 그렇게 공허한지조차도 설명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구씨에게 건네는 한 마디는 “날 추앙해요.” 방영 당시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던 이 대사는 단순한 로맨스는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달라는 절박한 요청에 가까웠지. 여러 인터뷰에서 “사람은 언제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한 박해영 작가. <나의 해방일지>는 그 욕망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최근작 <모자무싸> 역시 같은 궤 위에 있다. 제목 그대로 작가는 인간이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는 순간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비교와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사람들. 드라마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질투와 열등감, 자기혐오를 결코 숨기지 않는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직장인, 가족 안에서도 외로운 사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청춘과 중년이다. 그는 그들에게 ‘기적’을 선물하지는 않는다. 대기업 임원이 되지도 않고, 엄청난 부자가 되지도 않기 때문. 다만 자신을 미워하던 사람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고, 타인을 밀어내던 사람이 타인과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작가가 관심을 갖는 변화는 언제나 늘 그정도 크기다. 

일각에서는 그의 작품이 불행한 인물들을 반복적으로 다룬다는 이유로 ‘불행 포르노’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해영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절망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엔 불우한 삶일지라도, 그 안에는 저마다의 행복과 살아갈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박해영 작가의 작품은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