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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부산의 정, 지명에서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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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로 뻗어나간 부산 출신 인물이 있다면, 타지 사람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부산 놀러 오면 풀코스로 함 모시겠십니다”

부산은 그런 곳이다. 의리 하나 무기로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역이다. 대개 부산의 풀코스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밥집, 밀면집, 남포동 걷다 눈에 보이는 씨앗 호떡, 광안리, 부산의 자랑 회와 함께하는 소주가 대표적이다.

미디어에서 부산 사람들은 성격도 시원하고, 깡도 있는 화끈한 사람들로 자주 묘사된다. 평범한 대화도 싸우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할 만큼 뜨거운 도시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부산, 그 시작은 ‘가마솥’과 연관되어 있다는 설이 있다.

부산-디오리진-국밥-풀코스

지명의 유래부터 뜨겁다

부산의 지명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조선 시대, 지금의 동구 증산 일대가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가마 부(釜)’를 활용해 ‘부산’이라 불렸다는 설이 조선 초기 문헌 역사적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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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행정 명칭은 ‘동래부’였다. 지금도 부산에는 동래구가 있고, 동래부라는 명칭이 행정 명칭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과거 부산의 중심지였다. 현재의 위상으로 가늠하자면, 동래는 해운대와 센텀시티보다 훨씬 오래된 부산의 전통 부촌이다.

그 뜨거움에는 아픔이 담겨 있다

1876년, 조선은 일제와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들은 개항을 강제했고, 가장 먼저 열린 항구는 부산이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본거지가 되었던 부산은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고, 물자도 자주 오고 가는 곳이었던지라 빠르게 근대화되었다.

그러나 부산 사람들에게 근대화는 독이었다. 결국 메인 거리는 일본인들의 차지가 되었고, 시민들은 거리를 벗어나 산 위로 올랐다. 이 아픔은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피난민들로 넘쳐나던 부산은 그렇게 산 비탈길에 판자촌을 이뤘다. 벽화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감천문화마을’이 그 아픔의 생생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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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자랑, 뜨거운 국밥에도 한국전쟁의 비극이 담겨 있다. 먹을 게 없었던 그 시절, 허기를 달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돼지국밥’이었다. 돼지의 주요 부위를 먹고 남은 뼈나 부산물들을 장시간 우려내 깊은 맛을 만들었다.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간단한 방식은 적은 재료로 수많은 사람들의 배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국밥은 존재했다고 하나, 국밥이 부산의 대표 음식이 된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부산 풀코스, 그 뜨거운 정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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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수많은 서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가마솥 안 국밥은 가마솥을 닮았다 하여 불린 지명과 기묘한 접점을 만들었다.

없는 것도 나누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부산하면 떠오르는 ‘의리’, ‘정’이 그들을 대표하는 성격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이 지역 내 전통이 되어 ‘부산 풀코스’ 같은 밈이 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아직 풀코스로 대접하겠다는 부산 친구 없이 여행으로 온 사람들은 자갈치 시장을 자주 간다. 그러나 부산 사람들은 현지인이 가는 곳은 따로 있다며 자기만 아는 맛집에 데려갈 터. 이건 부산 사람들 각자 최애 플레이스가 있기에 콕 집어서 알려주기 힘들다.

자신만 아는 국밥 맛집, 푸짐한 회 맛집 등이 집 근처에도 수두룩하니, 부산 친구의 풀코스 대접은 믿고 한번 따라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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